12월 18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롤파크 아레나에서는 월드 챔피언십 3연패라는 대기록을 달성한 LoL e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 ‘페이커’ 이상혁(29·T1) 선수의 미디어 인터뷰가 진행됐다.
참고로 페이커 선수는 올해 7월 27일, 인천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진행된 ‘T1 홈그라운드’ 팬 이벤트에서 T1과의 4년 장기 재계약을 깜짝 공개하며 영원한 ‘T1’ 소속임을 증명한 바 있다. 실제로 이날 인터뷰 자리에는 ‘2029’ 라는 연도가 적혀 있는 페이커 선수의 유니폼이 같이 전시됐다.

사진 출처: T1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롤드컵 우승을 경험한 남자’, ‘LOL 명예의 전당 최초 헌액자’ 등 페이커 선수의 행보는 언제나 최고였고, 가장 앞서 있던 것이 사실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은 팀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상황 역시 그렇다.
- 2029년까지 장기 계약을 발표했다. 커리어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었음에도 끝없이 도전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회적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이를 선한 영향력으로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4년 재계약을 하게 된 이유는 T1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준 것이 가장 크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4년 동안 팬들에게 더 좋은 영감을 주고 싶고, 스스로를 더 성장시키고 단련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예전과 비교하면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조금 더 좋은 시각으로 바라보시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물론 아직 부정적인 부분이 남아 있지만, 이런 부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조율될 거라고 본다. 예를 들어 게임을 오래 하면 해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긍정적인 면도 많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로 딱 나누기보다는 균형을 맞춰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우리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면서도 해로운 면이 있는 것처럼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T1의 원맨팀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더 좋은 제의가 있었음에도 T1에 남은 이유는 무엇인가. 금전적인 다른 보상에도 불구하고 T1에 10년 넘게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본인의 인생에서 T1은 어떤 의미인가.
T1에서 금전적인 부분 외에도 좋은 제안을 많이 해줬기 때문에 오랫동안 T1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 T1이라는 팀 자체가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좋은 대우를 해주고, 최고의 팀에 걸맞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2029년 이후 페이커 선수의 모습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2029년까지 계약이고, 그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는 나도 궁금하다. 은퇴 후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하거나 어떤 일을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프로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좋은 경험을 쌓으며 성장하는 것이 정말 뜻깊게 느껴졌듯이, 2029년 이후에도 e스포츠와 관련된 뜻깊고 의미 있는 일들로 삶을 채워 나갈 것이다.
- 20일 국무총리님과의 대담이 있는데,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사실 오늘(18일) 이미 국무총리 대담을 진행하고 왔다. 아침 활동 스타일이 아니라서 말이 조금 조리 있게 나오지 않았는데, 총리님이 나에 대해 많이 물어봐주셔서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려드릴 수 있었다. 그 외 다른 이야기는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대답은 열심히 하고 왔다.

사진 출처: T1
- 롤드컵 우승 후 이재명 대통령께서 축전을 보내주셨는데, 팀원들끼리의 비하인드가 있을까. 2029년이 되면 서른 중반이 되는데, 어떻게 보낼 계획인가.
요즘 대통령님도 축하를 보내주시고 여러 곳에서 축하가 많이 와서 감사한 마음이다. T1 팀원들도 대통령님이 축하해주시니까 분명 기뻤을 거라고 생각한다. 계약 기간이 4년이다 보니 T1에서 계속 팀 생활을 하게 되는데, 아마 프로 생활 전체를 T1에서 보낼 것 같다.
- 2026~2029년까지 페이커 선수가 새로 증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남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이 발전하는 것이 목표다. 증명을 해야 한다면 나 스스로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측면에서 많이 성장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30대 프로게이머는 많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페이커 선수는 최정상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페이커 선수를 보며 프로에 대한 영감을 불태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40대에도 게임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e스포츠는 쟁쟁하고 훌륭한 젊은 선수들이 많아서 40대까지 활동하기는 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기량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X에서 AI와 T1의 대결을 제안했는데, 제안을 받고 어떤 반응이었는가. AI와의 대결이 프로 생활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을까.
AI나 빅테크 산업에서 게임 산업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GROK과의 대결로 알고 있는데, 나도 개인적으로 기대가 많이 된다. 체스는 이미 오래전에 AI에게 정복당했지만, 롤도 언젠가는 AI가 우리를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년에 바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이기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 AI가 이기는 날이 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 롤이 대중화가 되고, 2023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페이커 선수가 금메달을 따게 되면서 더 화제가 됐다. 페이커 선수 내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도전을 해보고 싶은가, 좋은 추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내년에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데, 국가대표로 출전할 수 있는 영예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항상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은 나 혼자만의 공이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 정말 열심히 한 결과였다. 그 덕에 그런 영광을 누릴 수 있었고, 아시안 게임을 통해 많은 분들이 LoL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 만약 현재 시점에서 프로게이머를 처음 시작한 17세의 이상혁에게 조언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그때의 나에게 사실 별로 해주고 싶은 말은 없다. 처음 시작할 때도 정답을 바라고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경험하면서 많은 걸 배우길 바란다. 그냥 “열심히 해”라는 응원 정도만 할 것 같다.
- 프로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승부욕과 열정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열정은 어렸을 때부터 그냥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있었다’가 제일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그런 열정이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지금도 이기고 싶은 마음과 게임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해서 계속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 지금까지는 LoL 선수 중 페이커 선수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는데, 포스트 페이커가 될 수 있는 선수는 누구인가.
롤에는 인기 많은 선수도 많고 모범적인 선수도 많아서, 내 이후에 큰 인기를 얻을 선수는 충분히 많을 것 같다.
- 13년 간 플레이를 하면서, ‘이 선수는 꼭 이기고 싶다’, ‘경쟁에서 재미를 느낀다’ 와 같이 라이벌 의식을 느꼈던 선수가 있는지 궁금하다.
경기력이 좋다 보니 쵸비 선수를 상대할 때마다 정말 재미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쵸비가 뛰어나고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그게 오히려 내 성장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쵸비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 프랜차이즈 스타의 존재는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혁 선수가 T1을 선택한 것이 굉장히 높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팀과 함께 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적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T1이라는 명문 구단에서 뛰는 것은 내가 T1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T1도 나를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팀에서 오랫동안 뛰는 건 큰 의미가 있고 긍정적인 면이 많다. 롤 e스포츠 자체가 역사가 길지 않고, 선수 수명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증명하는 중이라 불안정성 때문에 긴 계약이 적었을 뿐이다. 앞으로는 그런 오래가는 계약 사례도 더 생길 것으로 본다.
- 대규모 패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준비하는가.
예전에는 패치를 많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는데, 요즘은 그런 패치가 게임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경우가 많아서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교전이나 팀 플레이가 강조됐는데, 다음 시즌에는 개인 능력이 더 부각될 여지가 있어서 또 새로운 생동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 한 종목의 스포츠 스타로서 페이커 선수의 언행이나 태도 관리가 중요한데,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페이커 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하다. 원래 조심성이 많은 스타일이라 탈 없이 모난 데 없이 봐주시는 것 같아서 더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모습을 꾸준히 보여드리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고 싶다.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고, 스스로 성장하면서 노력할 것이다.
- KT와 두 번의 롤드컵 결승이 있었는데, 항상 2:1로 지고 있는데 웃고 있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와 지금의 마음가짐 차이가 있는가.
2013년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게임이 재미있어서 웃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팀원들과 농담하다가 재미있는 순간이 있어서 웃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게임 자체가 즐겁기 때문에 그런 장면이 나온 것 같다.
- 2022년 3년 재계약을 하고 3번 우승을 기록했다. 2029년까지 활동하는 동안의 목표는 무엇인가.
4번 연속 우승하면 좋겠지만, 승패를 떠나서 내가 가진 걸 최대한 활용하며 노력하는 것이 목표다.

사진 출처: T1
- 재계약 후 4년 간 T1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또 동료들에게는 어떤 동료가 되고 싶은가.
남은 기간 동안 가장 우선인 부분은 기량의 성장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성장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 이를 목표로 삼았다. 리더십은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아서, 팀원들과 함께 게임 안팎으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
- 과거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어봤을 때 연습,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부분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고, 노련해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혹시 이후에 지고 나서 펑펑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타고난 부분에 대해서는 태어날 때 부터의 재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유년기에 어떤 것을 접하고 경험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게임을 접하지 않았다면 프로게이머가 되지 못했을 거다. 게임 재능도 결국 그런 열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그런 능력이 있지 않으면 어렵다고 본다.
2017년 패배 후에 흘린 눈물은 3:0으로 패배했던 분한 감정이 올라온 것이다. 최근 그렇게 분하거나 억울한 감정이 덜 느껴지는 이유는 패배에 대한 정의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패배를 분하고 억울해 할 것이 아니라, 다시 성장할 동력으로 보는 마음이 생겼다. 혹시 ‘열정이 식은 건가’ 하는 고민도 했는데, 그보다는 패배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다.
- 최근 구마유시 선수가 이적을 하게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구마유시 선수와는 올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에도 우리 팀에서 함께한 시간이 의미 있었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건 구마유시 공도 크다고 생각해서 고맙다고 말은 안 했지만 “고생했다”고 전한 것 같다.
- KT와의 결승 경기가 팬들 사이에서 좋은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페이커 선수에게 좋은 경기란 무엇인가.
좋은 경기는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경기다. 승패가 반드시 우리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좋지 않은 자세라고 본다. 좋은 경기를 하자는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팬마다 마음가짐이 다를 수 있지만,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도 팬심의 일부라 감사하다. 그렇지만 서로 응원하고 ‘적’이 아니라 함께 경기하는 파트너로 보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 워낙 업적이 대단하다 보니 본인만 본인의 업적을 갱신하는 것 같다. 본인의 업적이 무겁거나 버겁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내 기록이 부담으로 느껴진 적은 없다.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 나만의 것이다 보니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
-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는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가.
주로 책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책의 좋은 점은 다른 사람의 인생과 이야기를 한 번에 압축해서 볼 수 있다는 부분이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는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 일기 쓰거나 열정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고민하면서 많이 생각한다.
- T1의 스케줄이 많아서 경기력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외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예전과 달리 이제 프로게이머는 게임만 잘한다고 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은 어느 정도 타협이 필요하고, 나 역시 경기력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대외 활동이나 이스포츠를 알리는 부분에 소홀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에게는 그 일정이 그렇게 무리는 아니지만, 올해는 기복 있는 경기력이 나온 것 같다. 내년에는 이 부분을 개선해서 경기와 외부 활동 모두 잘 해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실력도 실력이지만 모범이 되는 행실로 주목을 받는다. 이런 시각이 부담이 되지는 않는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팬분들의 관심이 컸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로 알려진 것 같다. 그 보답으로 나를 잘 가꾸는 게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조심스러운 성격이라 이게 어렵지 않고, 오히려 축복이라고 본다.
- 프로게이머를 오래 했다. 만약 프로게이머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은가. 은퇴를 하면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프로 생활을 하면서 취미가 많이 생겼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 것 같다. 프로게이머 안 했으면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됐을 것 같다. 전략적인 분야나 컴퓨터 관련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 페이커 선수를 사랑하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내년부터 2029년까지 선수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감사하다.

사진 출처: T1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