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향한 비틀린 프레임, 문제는 미디어

게임 미디어협회 신년기획 10부작
2020년 01월 09일 14시 42분 06초

한국사회에서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모순적이다. 수출 효자산업으로 각광받는 동시에 청소년을 타락시키는 중독물질로 낙인 찍혔다. 정부의 게임육성 이면에는 서슬 퍼런 규제의 칼날이 숨겨져 있다. 성공한 게임회사 경영자는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되지만, 정작 그들이 만든 게임은 마약 취급받는다.

 

정부는 육성이라는 당근과 규제라는 채찍을 써가며 게임을 ‘산업’의 울타리로 가두어 놓았다. 사건만 터지면 사회의 책임을 게임에 덮어씌우기 일쑤다. 외화 벌어 오는 ‘게임산업’은 환영하지만, 게임이 일상과 어울리는 ‘게임문화’는 배척한다. 게임을 향한 우리 사회의 모순은 한치의 접점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그어왔다

 

급기야, 올해 세계보건기구의 게임 질병코드 도입으로 또 다른 탄압의 명분이 제공됐다. 총 10부작으로 진행될 이번 기획은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를 맞아 그간 한국게임이 받아온 게임 규제의 역사, 그리고 게임질병 코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담아보았다. 

 


 

 1부: 왜 게임은 탄압받는가?

1)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게임은 탄압받았다! 게임규제 50년사

2) 문제는 미디어! 게임을 향한 비틀린 프레임 (현재글)

3) 거짓과 증오를 이용하라.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게임 죽이기 

 

2부: 게임질병코드, 또 다른 탄압의 명분

1) WHO의 헛발질, 논란과 엇갈린 반응  

2) 문체부, 복지부, 여성부의 서로 다른 셈법

3) 민관 협의체 구성,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때

 

3부: 진짜 의도는 이것! 게임 질병코드 본질은?

1) 질병코드의 본질은 게임이 아니다.

2) '마약 중독자 만드는 도파민 괴담?' 게임 마약론의 함정

3) 과잉 약물치료. 게임장애 근본적 대안 'NO'

4) 결론은 돈! 중독세 논란으로 바라보는 '돈의 전쟁'​

 

■ 2부 문제는 미디어, 게임을 향한 비틀린 프레임 

 

한편에서는 ‘게임’과몰입, 반대편은 ‘게임’중독이라고 한다. WHO는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로 명명했다. 작년엔 ‘게임’질병코드라는 용어로 업계가 시끄러웠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확실한 건 '게임'이라는 말이 고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프레임의 맹점이다.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어빙 고프만은 프레임 이론을 주창하며 "맥락이 우리의 행동과 이해를 특정 짓는다."고 설명했다. 맥락은 논리나 사실보다 상위에서 인간의 인식 구조를 제어하는 개념이다. 정보를 어떤 틀(액자) 안에 넣고 전달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에 전혀 다른 영향을 줄 수 있다. 

 

과연 청소년 문제와 각종 사회현상이 게임으로 인해 뒤틀리고 폭력적으로 변한 것인가. 지금 독자 눈에 보이는 이 텍스트 역시 '게임'과 부정적인 어휘가 등치 되어 나타난다. 모든 순간을 프레임 속에 갇혀서 보내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미디어와 문화들, 게임은 그중 하나다(출처: pixabay)

 

게임만 담은 순간, 이미 '액자'는 어긋났다

 

언론 매체에서 공격하는 게임 남용 형태는 게임만의 특성이 아니다. 공격 대상이 된 게임의 절대 다수는 온라인게임에 해당하며, 과용 상태의 특성은 게임보다 '온라인'에 방점이 찍힌다. 남보다 돋보이려는 욕망, 여러 사람들 속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 등. 이것은 정확히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의 특성이다.

 

인터넷방송에 빠져 수천만원을 탕진한 열혈팬이 생기는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인식하고 바라봐주길" 원하는 상호작용 욕구에 해당한다. 현실 인간관계를 거부하고 SNS 익명 계정간 대화에 빠진 이들은 "소통을 원하되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게시판에서 무의식적으로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밤을 새우는 네티즌 역시 정보와 관계에 과잉 의존하는 성향을 노출한다.

 

온라인게임이 성취 및 과시 욕구가 명료하다는 특징을 가졌지만, 실상 뉴미디어 전체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 커뮤니케이션 과잉 의존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상당수는 일부 정신의학계와 학부모단체가 주장하는 게임중독의 행동 양식을 유사하게 따르며, 근본 원인도 비슷한 연구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아동 세대는 게임보다 유튜브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 미디어 과용 현상은 스마트폰, 인터넷, 동영상,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그러나 유독 게임만 ‘이용장애’ 혹은 ‘질병’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공격받고 있다. 프레임에 담은 재료가 잘못된 순간, 해석 역시 어긋난다.

 


이스이터널은 피와 살이 튀지 않는다

 

왜곡된 프레임은 무지에서 출발한다

 

"게임에 중독된 A가", "해당 용의자는 평소 어떤 게임을" 같은 표현이 사건사고에서 관용구처럼 쓰인 지 오래다. 

 

게임과 폭력사고 빈도가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그렸다는 연구 결과나 통계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게임과 폭력성을 연결시켜 왔다. 사건과 '게임'을 등치 시킬 경우 뉴스 노출도가 올라간다. 사회적으로 깊은 분석과 고민을 거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편하다.

 

가장 처음 유명해진 사례는 2001년 중학생 양 군의 동생 살인사건이다. 언론들은 범죄자에 대해 "살과 피가 튀는 잔혹한 게임인 '이스이터널'과 영웅전설'에 심취해 있었다"고 적었다. 두 게임을 아주 잠시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묘사한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발생한 뉴질랜드 총기테러 사건에 대한 보도도 게임에 대한 비틀린 프레임을 보여준다. 용의자는 스스로 문답한 선언문에서  "비디오게임으로 폭력성에 눈을 떴냐고? 그렇다, 포트나이트가 나를 적들의 시체 위에서 춤을 추는 킬러로 만들었다"고 적은 뒤 다음 줄에 "No"라고 적으면서 게임으로 폭력성이 생긴다는 미디어의 행태를 풍자했다.

 

그러나 연합뉴스는 뒤의 한 마디를 뺀 채 '용의자가 포트나이트로 살인훈련을 했다'고 오보를 냈으며, 수많은 매체들이 사실확인 없이 받아 적었다. 미디어 자체가 이미 프레임에 매몰된 채, 액자 이면에 담긴 메시지를 읽지 않은 것이다.

 

왜곡된 프레임이 형성되는 대부분의 이유는 '사전지식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게임이 중독되기 쉬우며 폭력성을 유발한다는 인식이 성공적으로 퍼진 이유도 같다. 기성 세대는 게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게임'의 개념이 매우 넓어서, 게이머들조차 모든 부분을 다 알기 어려운 것도 주요 이유다.

 


총기사고는 게임 총기가 아니라 현실 총기 규제의 문제 아닐까

 

'미디어 의존'이라는 '현상' 분석이 먼저

 

문제는, 프레임을 온전히 맞추지 못하면 실제 미디어에 빠져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진정한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뉴미디어는 전반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 양식이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 

 

불행한 환경에서 각종 미디어로 도피하는 경우, 사회에서 격리된 끝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 각종 정신질환이 과몰입으로 드러나는 형태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공격대상으로 모든 원인을 몰아넣으면서, 근본적인 사회 분석은 뒤로 밀렸다. '미디어이용장애'를 질병이 아닌 현상으로 명명하고 여기에 대한 원인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지정이 본격적 연구를 위해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해당 질병코드에서 설명한 행동 양태가 게임 고유의 특성이 아니라 온라인 미디어의 전반적 현상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동시에 사회문화적 고민이 들어가야 했다.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는 그동안 이어져온 프레임의 결과물이다. 이 용어는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드는 도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청소년 보호 프레임, 게임 이전에 만화가 당했다

 

문화, 그 이상의 프레임

 

"게임은 문화다"라는 말이 프레임 전쟁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게임은 당연히 문화다. 그런데 세상에 문화는 너무 많고, 모든 문화가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게임에 부정적 프레임을 씌운 주류 미디어가 지속적으로 써온 단어는 명료하다. '중독, 폭력, 청소년, 사행성'. 그 자극적이고 절박해 보이는 프레임에 맞서 단순히 문화라는 말로 대응할 순 없다. 한국 게임계는 그동안 기술과 사업 분야 외에 연구를 등한시했다. 게임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없었다. 지금 현실에서 문화라는 발화는 공허하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한국 게임계는 게임이 '어떤 문화'인지 대답할 준비를 마쳐야 한다. 그 답을 문화 예술의 개념에서 이미지화해 보여줄 차례다. 미디어와 문화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을 진행하는 동시에, 모든 미디어 관계자들이 모여 미래를 위한 프레임을 구축해야 한다.

 

게임을 향한 공격이 끝나면, 마녀사냥의 액자 속에는 또 다른 신흥 매체가 들어갈 것이다. 악순환을 끊을 때가 됐다. 진정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도 여기에 있다.

 

글/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이번 공동기획은 한국게임전문미디어협회(KGMA)와 한국게임전문기자클럽(KGRC)에서 2020년 신년특집으로 준비한 것입니다. 이번 기획에는 KGMA 소속 15개 매체 편집장과 기자들이 참여했습니다. 

 

대표편집자 이덕규 게임어바웃 국장, 김미희 게임메카 기자, 김성렬 게임포커스 기자, 김한준 지디넷뉴스 기자, 길용찬 게임인사이트 기자, 박상범 게임뷰 기자, 이원희 데일리게임 기자, 임영택 매경게임진 기자, 허새롬 PNN 기자

 

김은태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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