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리마스터와 과거의 향수, '디아블로2:레저렉션'

향수는 불편함에도 공평
2021년 10월 02일 00시 17분 57초

지난 9월 24일, 약 20년만에 공포의 악마가 돌아왔다.

세기말의 분위기가 미처 빠지지 않았던 2000년부터 2001년, 전국 각 동네에서 세력을 넓혀가고 있던 PC방은 너도나도 들어가는 통로의 벽에 붙은 액자나 건물 외부에 보이는 창문에 사악한 악마의 형상을 붙여놨다. 검고 붉은색 위주로 활용된 이미지는 당시 보기만 해도 약간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던 사악한 해골의 얼굴. 이후 수십년간 마니아들에 의해 꾸준히 플레이되던 디아블로2, 디아블로2 확장팩 파괴의 군주의 출시와 그 인기를 알 수 있었던 부분이다.



디아블로2와 그 확장팩인 파괴의 군주 리마스터 결정판인 '디아블로2:레저렉션'은 액션 롤플레잉 장르의 한 축을 도맡아 정의한 디아블로2를 현 시대에 맞게 충실히 부활시킨 신작이다. 최신 게이밍 하드웨어의 성능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개발된 이 신작은 최대 4K 해상도를 지원하며 전면적인 리마스터를 거친 7.1 돌비 서라운드 오디오를 통해 게임 속에서 연출되는 온갖 소리들을 온전하게 플레이어에게 전달한다. 총 27분 분량의 시네마틱 영상들도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뛰어난 고해상도 비주얼을 선보인다.

이렇게 원작을 현 시대에 맞춰 선보이기 위한 상당한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디아블로2의 원작이 주는 경험을 보존하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겨 디아블로2:레저렉션의 아래에는 2000년 당시와 동일한 계산 및 게임 로직을 수행하는 오리지널 게임 엔진이 구동된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도중 원작의 감성 그대로 돌아가기 위해 단축키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게임 화면을 원작의 모습 그대로 변경할 수 있다.



■ 눈에 띄게 향상된 그래픽

디아블로2:레저렉션은 눈에 띄게 향상된 그래픽으로 리마스터의 진가를 보여준다. 이미 이전 베타들을 통해서도 그래픽의 향상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으며, 작업이 덜 끝나 기존 영상을 쓰던 시네마틱도 지금의 기술력으로 새롭게 만들어 눈과 귀가 즐거운 완성작이 탄생했다. 거기에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만으로 기존 버전인 레거시와 레저렉션을 순식간에 오갈 수 있어 필요하다면 레거시 버전으로 회귀해 플레이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레저렉션을 플레이한 이후로 레거시 버전을 돌려보면 엄청난 역체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또, 캐릭터 선택 화면에서 현재 캐릭터가 진행하고 있는 액트의 모습이 배경으로 표시되는 캐릭터 생성 및 확인 관련 변화도 볼 수 있다.

디아블로2:레저렉션에 적용된 최신 그래픽은 기본 해상도 자체도 넓게 잡아줘 자매단 야영지도 조금 더 넓어진 기분이 들기도 하고, 배경 미술도 많이 향상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캐릭터의 모습이나 괴물들, NPC 모델링 등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게 확대하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카메라를 확대하는 기능이 존재한다. 이 기능을 통해 캐릭터가 착용한 장비도 좀 더 충실하게 구현해냈다. 서클릿 계열 장비도 이미지대로의 모습으로 착용되게 변경된 것은 유명하며 이외에도 유니크 장비의 특수한 외형들이 범용 장비의 디자인이 아닌 고유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캐릭터 감상의 맛을 살렸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련된 모습으로 탈바꿈한 각종 모델링을 볼 때도 이 기능은 꽤 유용하다. 이외에도 물에 비친 캐릭터의 모습이나 의족이 떨어질 때의 모션 등 사소한 부분에서도 섬세한 리마스터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삭제 버튼이 눈에 띄니 주의해서 다루자

레거시 버전으로 돌리는 것은 단순히 그래픽만이 아니라 번역도 당시의 것으로 대체된다. 직업, 인명, 지명 등 최근의 시리즈에 와서 정립된 한국어판의 번역을 기존의 번역으로 되돌려 원소술사를 소서리스로, 악의 소굴을 덴 오브 이블로 바꿔서 그 때 그 감성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UI 역시 당시의 것으로 대체되니 이전의 시스템이 익숙하거나 잠시 그리워지면 원 버튼으로 세기초 감성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다만 시각적인 측면에서 불편한 사항도 생겼다. 디아블로2:레저렉션을 플레이하다보면 한 시간마다 게임을 n시간 동안 플레이하고 있다면서 일시적으로 화면이 어두워지는데, 디아블로2가 아무리 한 번에 액트를 쭉 밀어버릴 수 있는 상대적으로 짧은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본격적인 시작은 상위 난이도로 올라가면서부터이며 온라인으로 컨텐츠가 완성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각을 잡고 플레이하면 긴 시간을 들이기도 하는 게임이다. 그럴 때 한 시간마다 화면을 어둡게 만들면서 집중을 흩어놓는 것은 조금 신경에 거슬린다. 아니, 굳이 오랜 시간을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한창 플레이하고 있는 도중에 화면 전체가 어두워지면서 그런 메시지가 출력된다는 것은 불편하다. 애초에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의 다른 게임들은 게임 플레이 시간을 구석에 작게 알려주는 등 좋은 선례가 있는데도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했나 하는 의문이 든다.





■ 편의성 등 개선 있어

이번 리마스터를 통해 여러 개선점들이나 변경점이 적용됐다. 베타 시점부터 대부분의 기능들이 알려졌기에 새롭지는 않지만 원작의 시스템과 비교하면 상당히 편해진 부분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온/오프식으로 설정할 수 있는 편의기능 등 설정 메뉴에서도 다양한 기능에 대한 설정이 가능하며 가장 눈에 띄는 시스템 중 하나가 자동 골드 습득이다. 기본적으로 켜져있는 이 기능을 통해 이제는 전투나 물체를 부수고 나온 골드를 하나하나 눌러주지 않더라도 근처를 지나가면 자동으로 골드를 주울 수 있다.

알트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떨어진 아이템의 이름이 표시되는 기능도 간편해졌다.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거나 알트 버튼을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아이템 표시가 유지되는 기능이다. 이를 통해 매번 누를 필요 없이 토글 방식으로 켰다 끄는 것이 가능해 아이템 습득이 꽤나 편리해졌다. 물론, 액트4처럼 노말 난이도로 방을 열어도 유저가 많이 들어오는 몇몇 인기 스팟은 보스를 처치하고 나온 아이템들이 빛의 속도로 사라지니 웬만하면 처음 플레이할 때 클리어가 어려울 지경이 아닌 이상 한 번 정도는 혼자 쭉 클리어해보기를 추천한다. 사실 노말 자체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난이도도 아니니 차근차근 진행하면 금방 디아블로를 넘어 확장팩인 액트5로 넘어가 바알과 대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외에도 아이템 도박 시스템에서 매번 창을 닫고 대화를 다시 거는 대신 새로고침 버튼을 만들어 간편하게 장비 뽑기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나 컨트롤러 지원, 게임 내 시계 표시와 래더 전용 룬 및 큐브 레시피의 싱글 적용, 용병의 스킬 및 능력치를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한 능력치 화면 등 상당수의 시스템이 추가되었다. 온라인 관련 기능들을 비롯해 기존의 불편한 요소들이 꽤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편리해진 것은 아니다.

출시 직전까지도 검토하고 있었다는 물약이나 보석 등의 아이템 겹치기는 결국 성사되지 않아 기존처럼 인벤토리 공간을 차지하는데, 심지어 인벤토리 역시 좁아터진 그대로여서 여전히 가방에서 공간 창출의 마법사 노릇을 하다 그것도 안되면 호라드릭 함에까지 아이템을 꽉꽉 채우고 결국엔 마을 귀환 스크롤을 사용해 공간을 비우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일이 그대로 재현된다. 이는 물론 별도의 부적 인벤토리도 마련되지 않았으니 원작과 마찬가지로 효과 좋은 부적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녀야하니 초기엔 특히 물약으로 가득차고 나중에는 부적 등 다양한 아이템으로 가득해 인벤토리 여유가 그다지 없는 편이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하나, 창고가 넓어졌으며 공유 창고도 3개까지 추가되어 창고만은 여유로워졌다.





■ 과거의 기억이 새록새록

그래픽과 사운드 측면에서는 상당한 리마스터 결과물을 보여준 디아블로2:레저렉션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음에도 원작의 감성을 지니고 있어 그 때의 기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만들었다. 악의 소굴의 마지막 몬스터까지 처리하면 빛내림처럼 동굴에 빛이 새어들어오는 연출, 1편의 주인공이었던 핏빛 큰까마귀의 최후, 안다리엘과의 첫 대면, 전반적으로 어두컴컴하면서도 개성이 살아있고 각 지역에 내리운 악의 그늘이 일으킨 참사를 잘 표현했던 환경과 사운드는 훌륭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불길의 강을 거쳐 디아블로를 소환하고 처치하면 확장팩 보스인 바알의 이야기가 남았음에도 묘한 성취감을 느끼며 잠깐의 여운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감성이 여전했다. 캐릭터 빌드도 대부분 한참 전부터 완료된 상황이라 큰 변경점이 없어 기존에 플레이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게임 진도를 뺄 수도 있어 파밍을 빠르게 시작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과거의 것을 유지한 부분에서 불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상당히 좁은 편인 디아블로2 특유의 인벤토리가 그 중 하나다. 결국 무산된 물약 겹치기도 그렇고, 줄인다면 줄일 수 있는 공간을 과거의 향수로 치부하며 외면하는 느낌을 주기도. 또, 출시 당시부터 심지어 10월 1일 밤부터 2일 자정이 넘어도 해결되지 않았던 서버의 불안정이나 초기의 캐릭터 관련 불안정한 버그들이 빈발하면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초기 서버의 불안정함을 보여줘 이런 부분에 있어 불만의 소리를 드높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 래더 1시즌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기존의 래더 기간을 줄이는 방향도 생각하고 있으며 초기 안정화를 우선하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을 떠올리면 아직 래더 시즌이 시작되는 시기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지금처럼 불안정한 서버 상황을 감내하면서 무리하게 일정을 진행시킬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여기서 나온 아이템은 하나도 못 챙겼지만, 내가 쓸 건 아니니까.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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