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포켓몬스터가 아니다, '포켓몬스터 울트라 썬'

추억팔이가 아니라 추억파괴, 최선인가?
2017년 12월 27일 12시 47분 26초

지금 20대 중·후반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어렸을 적 국내 더빙 방영을 했던 포켓몬스터 1화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본 기자 역시 어려서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했을 때 첫 편에서 깜짝 등장했던 칠색조를 보고 감동하고, 피카츄에 열광했던 아이 중 하나였고 이후로도 꼬박꼬박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즐겼던 포켓몬스터 팬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포켓몬스터 팬들에게는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꽤 컸을 것이다. 다른 걸 다 제쳐두고서라도 이름은 조금 아니다 싶지만 엄청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레인보우 로켓단 하나만으로도 말이다.

 

레인보우 로켓단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만 잠시 후 다루기로 하고, 그런 대형 소재 외에도 울트라 썬·문 CM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즐거운 알로라는 잊으라는 둥, 포켓몬스터 신작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에게 잔뜩 바람을 불어넣어 놓고서 내놓은 결과물이 울트라 썬과 문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사실상 닌텐도 3DS의 마지막 포켓몬스터 시리즈가 될 '포켓몬스터 울트라 썬·문'은 사실상 그런 기대를 나쁜 의미로 박살내버린 작품이다. 새로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결정은 존중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적어도 게임은 제대로 만들어야 존중을 받을 수 있는 선택이 아니겠나. 이렇게까지 작품의 숨통을 끊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오오모리 시게루의 "베테랑 개발자들은 스위치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이번 작품은 신인 개발자들이 담당한다."는 발언은 그의 유일한 일말의 양심이 외친 완성도에 대한 경종이 아니었을까?

 

 

 

■ 확장팩 답게 개선된 부분들

 

그럼에도 우선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기로 했다. 롤러코스터도 빠르게 가속하기 전에는 천천히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했다. 울트라 썬·문이 매부터 때리고 약을 발라주기에는 너무 나쁜 짓을 한 작품이라는데에는 대부분 이견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소개할 여러 단점들도 있지만 확실히 확장팩이라는 위치의 신작으로 전작인 썬·문에 비해 향상되고 개선된 부분들이 보인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편리해진 세이브 기능이 더욱 편해졌다. 또 썬에서 떡밥으로 남았던 공사장이 새로운 컨텐츠로 돌아온 점이나 스토리 후반부로 들어섰을 때부터 컷신의 연출이 좀 더 멋지게 진화했으며 특히 최종 보스와의 전투에서 보여준 연출과 BGM은 최고 수준이었고, 말리화의 시련 내용이나 특정 BGM들이 굉장히 좋다는 느낌을 준다는 점, 그 최종 보스가 오랜만에 압도적인 강함을 뽐낸다는 점, 향상된 인터페이스, 만타인 서핑과 울트라메가로폴리스에 진입할 때 하게 되는 미니게임 울트라 워프라이드 등의 추가를 꼽을 수 있다.

 

 

 

이외에도 리전 폼의 포켓몬들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모습으로 진화시키는 방법이 추가되었고 기술 가르침의 부활, 난입배틀 전용 포켓몬 표기, 도감 성능 향상 등이 이루어졌다. 여담으로 도감의 성능은 향상됐지만 알로라 도감의 설명으로 기존 메가진화 시스템의 설정인 '유대감'을 완전히 박살내는 설명들이 더해져 전작을 했던 플레이어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아, 전국도감도 여전히 없다.

 

문제는 이 개선된 부분에 언급된 것에서 세이브 등 일부를 제외하면 전부 꼬집을 수 있는 단점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오히려 단점이 장점을 덮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 시작해보자.

 

 

 

■ 게임 좀 하자…과도한 컷신

 

포켓몬스터 시리즈를 구분하는 '세대'로 봤을 때 동일하게 7세대에 속하는 전작 포켓몬스터 썬·문은 스토리를 본격적으로 강화했떤 블랙·화이트처럼 기존 작품들에 비해 스토리 파트에 힘을 주면서 스토리 전개 방식을 대화 위주에서 컷신 위주로 돌리는 포켓몬스터 시리즈에 있어선 새로운 방식을 추구했다. 그런데 3D로 넘어왔으니 컷신도 더 과감히 써보자!라는 발상 때문인지 여기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다. 모 게임 시리즈도 컷신을 과도하게 사용해 게임보다 보는 시간이 더 많은 유사 영화라는 평을 받지만 적어도 그 완성도가 높기라도 했지 울트라 썬의 컷신 남용과 오용은 도를 넘었다.

 

울트라 썬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블랙2, 화이트2에서는 주인공까지 변경하면서 속편 격의 스토리를 내놓았고 평가도 꽤 괜찮았다. 적어도 같은 주인공인데 변한 점이 별로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일부 시련이나 소소한 컨텐츠들의 변경만이 있을 뿐인데 썬을 플레이하던 시절에 봤던 내용들을 스킵도 할 수 없이 그대로 봐야한다는 점은 고역이었다. 다만 이 부분은 썬이나 문을 플레이 하지 않았던 플레이어라면 겪지 않을 문제다.

 

 

 

3D 시리즈로 넘어오면서 동선이 조금 좁아진 느낌이 드는데, 여기에 짧은 간격으로 스킵 불가능한 컷신까지 등장하고 한술 더 떠서 단순히 대화로 처리해도 될 부분을 어처구니 없는 컷신을 삽입해 지루함과 답답함을 더한다.

 

그들이 그렇게 사랑한 컷신을 정작 필요한 부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도 조금 어이가 없다. 대표적으로 낚시가 있다. 썬에서 모으던 지가르데 컨텐츠를 살짝 바꾼 '주인 씰'을 물에서 낚을 일이 있는데 거기서 기존에 해온 것처럼 컷신으로 전환해 주인공이 낚싯대를 던지고 낚아올려 주머니에 넣는 장면이 당연히 나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치 게임보이 컬러 시절 동굴에 들어가 비전 플래시를 사용했을 때처럼 화면이 검게 변한 후 낚아올렸다는 대화 메시지 하나 나오고 끝이다.

 

이건 명백히 만들기 귀찮아서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 게임을 플레이하면 당연히 알겠지만 낚싯대를 던지는 모션은 시리즈마다 있었고, 주인공이 아이템을 가방에 넣는 모션까지 존재하는데 컷신을 이렇게 많이 쓰는 울트라 썬에서 그 장면이 통편집 된 것은 기술 부족이라고 둘러댈 수 없는 부분이다. 혹시 그런 사소한 부분도 컷신으로 넣겠느냐는 반박을 할 생각이라면 지금 다시 울트라 썬을 정주행하고 얼마나 사소한 부분에서 컷신을 남발했는지 생각해보자.

 

또 다른 문제로는 구 3DS와 XL버전도 함께 혼용되는 타이틀이고 심지어 뉴 3DS 전용 타이틀이 아님에도 등장 수 같은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여지없이 떨어지는 프레임으로 게임 플레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포착했음에도 고집스럽게 컷신을 남발한다는 부분이다. 다수의 개체를 동시에 표시하면 기기 한계에 정면추돌한다는 것을 자기들도 인지했는지 트리플 배틀을 삭제했는데, 이 문제는 이후 완성도에 금을 내는 공헌을 하게 된다.

 


​공식 영상 속에서도 프레임 드랍이 보인다.

 

■ '또 없어진' 것들

 

포켓몬스터 시리즈에선 대대로 좋은 시스템이나 아닌 시스템의 구별 없이 이전에 있었던 기능들이 반드시 다음 작품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었다. 시리즈를 몇 번 접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늘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매 작품마다 그 작품의 특징으로 봐줄 수 있는 점들과 긍정적인 변화, 흥미롭게 여길 수 있는 신규 시스템과 다양한 포켓몬들까지 타이틀마다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런 불편들을 팬심으로 덮어줄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울트라 썬에서는 특출나게 나아진 부분은 적고 오히려 단점이 더 불어났다는 점에 3DS 기종에서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위치 탓에 기대치가 늘어 이런 문제들을 쉽게 넘어가기 어렵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전국도감도 여전히 없어진 채로 있다. 사실상 엔드컨텐츠들 중 하나였던 전국도감의 공백이 크게 느껴진다.

 

여전히 일직선, 더 좁혀진 일직선. 앞서 3D 플랫폼으로 넘어오면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동선이 좁혀졌다고 했는데, 이에 더해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곳도 점점 없어지는 느낌이다.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곳이 굉장히 일직선 구조로 되어 있어 가는 곳마다 막힌 느낌을 준다. 동사의 최신 기종 게임인 마리오 오디세이나 젤다의 전설:야생의 숨결이 다양한 곳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은 기종 스펙의 차이라고 얼버무릴 수 있겠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지방을 여행한다는 느낌을 주는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최신작으로 올수록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장소를 틀어막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심지어 CM을 통해 보여줬던 울트라메가로폴리스의 구조도 하나의 길과 하나의 탑으로 끝이다. 플레이어가 갈 수 없는 곳 투성이라면 포켓몬 세계를 탐험하고 포켓몬을 잡아 도감을 채운다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금 전 언급했던 트리플 배틀 시스템이 삭제된 영향도 크게 느껴진다. DS 기종에서는 충분히 더블 배틀이나 트리플 배틀로 전개됐을 전투 장면에서도 한 명씩 상대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 릴리에와의 더블 배틀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작 레인보우 로켓단 두 명과 전투를 벌일 때는 정중하게도 한 명만 덤비고 다음 상대는 배틀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다. 더 어이없는 것은 스컬단 조무래기 다섯이 동시에 덤벼드는데 정작 싸우는 것은 모두의 포켓몬을 수거했는지 단 한 명이 가진 5마리 뿐이다. 후반부 에테르 재단 세 명과 싸울때도 좀 덜 어색하게 예전 골드 버전의 목호처럼 하우와 글라디오가 여기서 한 명씩 상대하고 흩어지는 식으로 전개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아직도 없는' 것도 있다. 썬에서 나타났던 여러 공사현장의 이야기다. 여기에서 일부는 포토클럽으로 변신했지만 3DS의 끝이고, 썬에서 확장팩 개념으로 출시된 울트라 썬에서조차 공사장으로 남은 장소들이 있다. 이전에 공사 현장에서 포켓몬을 사용해 땅을 다지던 할아버지처럼 이것도 몇 세대는 지나야 볼 수 있을 것이란 떡밥일지도 모르겠다.

 

엔딩에서도 삭제된 것들이 보인다. 우선 옛 골드버전 엔딩의 오마주로 보이는 포켓몬이 춤추는 장면들이 흘러나오는데, 거기서 끝이다. 기존에 좋은 평을 받았던 사진 형식의 후일담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다. 삭제됐으니 말이다. 핸섬과 리라의 의뢰로 울트라 비스트를 잡으러 다니는 꽤 적당한 분량의 2회차도 삭제되고 각 버전마다 하나의 울트라 비스트를 두 마리 잡으면 2회차가 끝나는 것으로 변경됐다. 핸섬과 리라 퀘스트는 더미데이터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울트라 비스트를 잡는 과정도 잘 만든 것이 아니라 수풀에서 두 마리를 잡고 끝이다. 뻔히 울트라 비스트 전용 맵이 있는데 서브 컨텐츠에서나 확인 가능하다는 점이 얼마나 어이없겠나.

 

 

 

아, Z 버전 취소에 이어 삭제의 결정체인 '지가르데'는 오오모리 디렉터가 썬·문 출시 이전 E3 2016에서 인터뷰를 통해 언급한 "지가르데가 활약할 것"을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뜬금없이 마지막에 동굴에서 포효하는 장면이 나온 것은 사실상 지가르데를 향한 조롱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XY의 무대였던 칼로스 지방 전설 포켓몬이 이제 와서 짤막하게 나오는 것도 우습다. 알로라에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Z에서 등장했어야 할 지가르데를 이것으로 퉁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아! 설마 전작에서 지가르데 코어 모으던 게 활약은 아니겠죠. 오오모리 디렉터.

 

이건 없어졌다기보다 이번에라도 추가되길 바랐던 부분인데, 몇 세대 이전인 닌텐도 DS 시절의 하트골드·소울실버 버전에서 과거 피카츄 버전의 피카츄가 그랬던 것처럼 플레이어의 첫 번째 포켓몬이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기능이 이번 작품에도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냥 없다면 몰라도 라이벌 캐릭터인 하우의 뒤는 포켓몬이 졸졸 따라다니고, 필드에서도 포켓몬들이 다니는 모션들을 볼 수 있었으며 더미데이터 등에서도 포켓몬의 도보 모션이 모든 포켓몬·모든 폼에 존재하지만 플레이어의 뒤는 따라다니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굉장한 불만이 생긴다. 억울하게도 게임 속에서 볼 수 있는 포켓몬들이 걷는 모습들을 보면 정말로 귀엽게 걸어다니기까지 한다. 않이! 도데체! 웨! 나도 포켓몬 뒤에 데리고 다니고 싶다고…….

 

매우 적나라하게 감상을 말하자면 울트라 썬에서 없어진 것 중 가장 중요한 분실물은 게임프리크의 프로의식이 아닐지?

 

 

 

■ 결점 부각시킨 스토리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만들기 싫었던 것 아니냐"다. 썬과 달라지는 후반부 스토리는 꽤 괜찮지만 거의 복사와 붙여넣기를 반복한 느낌이다. 분명히 좋아진 것도 있다. 몇 번이고 말한 후반부부터 엔딩까지 이어지는 스토리는 호흡도 연출도 괜찮았고, 썬에서 비중이 공기에 가까웠던 말리화 파트에 시련을 넣고, 그 시련의 전개 방식도 굉장히 좋았다는 점에서는 칭찬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좋은 부분들에 비추어 스토리의 완급 조절이 실패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나 대충 건드렸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일부 시련은 변화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 변화를 맞이하는 것에서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애처롭다. 이로 인해 기존작 썬에서도 스토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밀리고, 이야기의 주체가 주인공이 아닌 릴리에에게 몰리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릴리에의 비중이 오히려 더 늘어난 느낌에 주인공은 본격적으로 들러리에 그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시련 이야기에서 잠깐 샜는데, '전기 시련'에서 플레이어는 시련을 받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시련 준비를 돕는다. 여지껏 체육관에 도전하기 위해 선결 과제가 있었던 경우는 있었지만 알로라에서는 시련을 받는 트레이너가 시련을 준비까지 하는 풍습이 있나보다. 스토리 비중까지 생각하면 그냥 주인공이 아니라 우연히 있었던 강한 '도우미 1' 정도의 위치가 적합할 정도다.

 

체육관이 없고 시련이 존재한다는 점은 새로운 요소를 불어넣는 과정이라고 인식했지만 이걸 주인공이 도와주고 리그 설립도 도와주는 걸 보면 주인공은 사실상 알로라의 개척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릴리에를 호의적으로 보는 플레이어들이 더욱 돕고 싶어지게 만드는 유사 미연시 컷신 비 피하기는 아예 해당 루트에서 릴리에가 동행하지 않아 삭제됐다. 라이벌인 하우는 끝까지 역상성이라서 라이벌이라는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여기에 루자미네의 무리한 이미지 메이킹 시도가 화룡점정이다. 썬에서는 악역이었던 루자미네가 여전히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채로 뜬금없이 선의의 조력자 역할을 하려 드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정말 만들기 귀찮았거나 만들다 말았다고 느껴지는 이유도 루자미네 탓이 크다. 기존에 루자미네가 광기에 빠져 포켓몬의 아름다움을 남기겠다고 얼음으로 포켓몬을 박제해 자신의 방에 비치해뒀던 것은 다들 기억할 것이다. 이건 울트라 썬에서도 여전하다. 모든 것이 해결된 후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울트라메가로폴리스에 있는 울트라 썬의 진정한 보스를 쓰러뜨리려는 이유도 빛이 사라져버리면 포켓몬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고, 자신의 에테르 재단과 조력 관계에 있는 울트라 조사단의 뒷통수를 치기도 하면서 주인공에게 패배한 후 아무런 대비도 없이 구즈마를 데리고 최종 보스에게 도전하러 갔다 깨지고 돌아와 조사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물론이며 적반하장으로 위기를 앞당긴 루자미네에게 핀잔을 주는 그들을 매섭게 쳐다보기까지 한다. 최소한 키스톤 훔쳐서 레쿠자를 진화시키고 운석을 막겠다는 상상력 대장 피아나가 더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이런 엉망진창인 스토리와 설정에 기름을 붓는 것은 라이벌이랍시고 있는 하우다. 뻔히 루자미네의 냉동 박제 포켓몬 등을 보고 나서도 역시 루자미네 씨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내뱉는 것을 보면 사실 썬·문과 울트라 썬·문의 진짜 악당은 하우를 위시한 이놈들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지금까지의 작품 중 최악인 대화 선택지도 자기들 멋대로 왜곡하는 게임에서 같이 있던 하우가 아닌 주인공에게 릴리에 납치의 책임을 묻는 글라디오 정도는 최근 이쪽 매체가 그런 불합리한 짜증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많아지고 있으니 넘어간다고 쳐도, 오히려 썬에서보다 접점이 줄어든 스컬단 보스 구즈마를 구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겠다고 이미 먼지도 안 나오게 털린 스컬단 조무래기들이 덤비는 장면 등은 실소만 남기며 Z기술과 관련이 있는 Z스톤을 획득하는 과정이 너무 무성의하다. 초반에 그냥 넘겨받는 것은 초반이니 그렇다 쳐도 후반부 챔피언로드에 덩그러니 놓인 Z스톤은 무성의의 극치다.

 

타깃 연령층을 어리게 잡았다고 쳐도 너무 그 연령층을 얕잡은 것은 아닐까. 책을 읽지 않은 아이라도 이런 부분들에 의문을 느낄지도 모른다. 적어도 냉동 박제는 지우고 루자미네를 건드렸어야 한다. 그러면 적어도 예쁘지만 성격 이상한 사이코 악역 아주머니라고 생각할 수는 있었겠지만 이 결과물은 너무나 작위적이다.

 

비중 문제로 인해 종종 주인공이 소외당한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는데다 여러모로 꼬집으려면 한없이 꼬집을 수 있는 것이 한껏 힘이 들어간 후반부 스토리로 감출 수 없는 울트라 썬의 스토리 수준이라고 여겨진다.

 


​아니 제가 보기엔 그쪽이 더

 

■ 상상력 이래 최악, 에피소드 RR

 

정말 딱 '거짓말은 안 했다' 수준에 걸치는 내용물을 담고 있다. 최초의 포켓몬스터 이야기를 다룬 관동 지방에 대한 팬들의 로망은 엄청났고, 정보가 그다지 공개되지 않았던 울트라 썬에서 공개된 레인보우 로켓단은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엄청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신규 컨텐츠였다. 로켓단의 리더 비주기부터 시작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악당들이 총 집합하는 것은 대단하잖은가.

 

그러나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레인보우 로켓단 아지트는 루자미네의 저택을 색깔놀이로 리모델링한 것에 지나지 않고, 관동 로켓단의 포켓몬을 고스란히 사용하는 조무래기들이 반가운 것도 처음 뿐이었다. 울트라 썬에서는 비중이 줄어들어 주인공과의 접점이 줄어든 구즈마가 플레이어와 동료 행세를 하는 것은 공통의 목적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면 되지만 레인보우 로켓단의 실태는 개탄을 금할 수 없는 수준이다.

 

우선 이 레인보우 로켓단의 조무래기들은 관동의 포켓몬을 단! 하나!만 사용한다. 때문에 각 전투들이 템포를 끊어먹는 느낌이 강하고, 아까도 언급한 타깃 연령층의 영향인지 '세계정복' 운운하며 멋짐의 결정체인 보스 비주기를 따르는 악당 조직의 일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한심함으로 플레이어의 어이를 손수 추출한다. 강제이동 발판 근처에서 무슨 발판으로 탈출하는지 모르겠다며 화장실이 급해 우는 어처구니 없는 단원과 포켓몬도 없이 손에 손잡고 주인공의 길을 문자 그대로 가로막는 단원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명이 동시에 덤비는 것이 아니라 기사도 정신으로 한 명씩 덤벼주는 로켓단.

 

 

 

당초 많은 사람들이 레인보우 로켓단에 거는 기대로는 최소한 각 악당 보스의 조무래기들이 구역마다 존재하고 최종적으로 비주기와 로켓단을 타파하는 그림을 그렸겠지만, 짜잔! 실제로는 각 단체들의 보스는 모종의 사건으로 자신들만 넘어와 비주기 밑에 들어온 것이고, 주인공이 상대하는 조무래기들은 죄다 비주기 산하의 레인보우 로켓단원이라는 작위적 설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정복을 꿈꾸는 비주기의 산하에 아무리 임시라지만 들어가 있는 세계멸망 희망자 플레어단 보스 플라드리도, 그 좁은 건물에 같이 있으면서 서로가 존재하는지도 모르던 아강과 마적, 이 태홍과 게치스를 포함해 이 모두가 사실상 보스러쉬에 들어간 보스 1, 2, 3, 4, 5 정도의 비중으로 그친다는 것도 실망 그 자체. 그렇게 각 보스들에게 도달해 보스를 쓰러뜨리면 어느새 비주기를 무찌르고 에피소드 RR이 끝난다.

 

최악을 논하자면 빠질 수 없는 '체육관 오브 관동'은 하하.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것이 이거라면 사실 죄악 수준의 상상력이 아닐까. 하루 한 번 싸울 수 있는 체육관 오브 관동은 출시 전 많은 팬들의 행복회로를 과열시키다 못해 폭발시킬 정도의 떡밥이었다. 영상에서 이 장소의 모습과 함께 썬에서 비중은 없지만 존재감이 컸던 고유 모델링의 용규가 등장하며 일각에서는 관동 지방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체육관 시스템의 도래다 라는 둥 에피소드 RR 만큼 기대를 걸었던 컨텐츠다.

 

하지만 정작 그 정체는 태권아저씨가 갈색시티의 체육관에 감동을 받아 만든 유사 체육관으로 내부에 위치하는 트레이너들은 죄다 알바생에 갈색시티를 모티브로 삼은 모조 체육관 답게 쓰레기통 스위치는 와인 보관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기존 팬의 기대를 박살내는 수준의 유머를 삽입해뒀다. 떡밥 중의 하나로 여겨지던 용규는 체육관에 도전하겠다고 먼 지방에서 온 캐릭터인데, 이 캐릭터 역시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체육관 낚시의 희생양이었던 것.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입장료를 매일 받으면서 보상이랍시고 주는 것이 갈색시티 체육관의 모조 배지다. 그래도 첫 날에는 매일 도전해서 다른 지방의 모든 배지를 주지는 않을까 싶었지만 정작 다음 날에 다시 가봐도 기존 배지를 낡았다고 다시 '수거'하고 새로운 배지로 '바꿔'준다.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 솔직히 화날 걸?

 

장점들을 나열할 때 '확장팩 답게'라고 했지만 실상 울트라 썬은 확장팩이라고 하기에도 조금 어폐가 있는 반푼이 완성도를 자랑한다. 때문에 아마 정가를 다 주고 산 사람이라면 정말로 아까운 기분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전-통'으로 두 개로 나눠서 낸 건 똑같아서 전처럼 작품을 두 개 모두 구입한 사람이라면 두 배로 화가 날 수 있다. 심지어 말리화의 시련 같은 최종 시련의 경우도 버전에 따른 차이가 있다. 애초에 친구들이랑 다른 버전 사서 하라고 그렇게 내는건데? 라고 되돌려주면 솔직히 할 말은 없지만.

 

울트라 썬과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블랙2, 화이트2에서는 주인공까지 변경하면서 속편 격의 스토리를 내놓았고 평가도 꽤 괜찮았다. 다른 걸 다 치워놓고 봐도 최소한 같은 주인공인데 변한 점이 별로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 정도로 변화가 없을 것이었으면 굳이 전통 어쩌고 변명을 하면서 두 가지 타이틀로 나누지 말고 Pt 기라티나나 에메랄드 버전처럼 하나로 합쳐서 내기라도 하면 평가가 덜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명 타이틀 기라티나

 

시인하자면 사랑하는 나머지 사심이 다소 들어가는 게임들이 몇 가지 있는데, 특히 그 중에서도 포켓몬스터 시리즈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한 애정은 정말 높은 편이라 어지간한 흠은 감안하는 편이었고 그럼에도 넘어가기 어려운 것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였다. 성공할 수밖에 없는 소재, 많은 플레이어가 열광하는 시기의 스토리 속 주요 등장인물들을 모아두고 폭삭 망한 것이 그 확장팩이었으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그런데 포켓몬스터마저 그런 일을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드레노어의 전쟁군주가 도입부를 포함해 최초의 확장팩 전반부는 좋았던 것을 생각하면 울트라 썬은 2회차를 시작하기 전 첫 번째 후반부가 그렇다. 둘이 아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어휴…….

 

최악을 꼽으라면 늘 등장할 것 같은 에피소드 RR은 거의 광고 사기에 가깝다. 아무리 아동 대상 게임이라고 해도 포스터의 저 진지함은 어디로 던져버리고 오줌 지릴 것 같은 로켓단원이나 강강수월래나 등장시키고 그런 허술한 볼륨이라니. 최소한 관동 추억팔이로 로켓단과 비주기가 등장했다면 백보 양보해서라도 전작에서도 등장한 레드와 그린은 조력자에 등장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 두 사람은 최초의 등장인물이자 로켓단을 직접 무너뜨린 장본인인데 말이다. 그냥 이 에피소드 RR은 기존 팬들을 낚아올려 돈을 벌기 위한 장난질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은 표현이다.

 


​악의 조직은 사실 게임프리크가 아닐까?

 

솔직히 스토리 중후반부부터 썬 버전과 완전히 스토리가 틀어지는데, 거기서부터 딱 엔딩까지는 썩 괜찮은 물건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썬과 겹치는 부분은 대충 수정이나 삭제로 퉁치고 그 부분만 새로 힘을 줘서 만들었다고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거기서 힘을 너무 소모한 나머지 엔딩 이후의 물건들은 완전히 죽을 쑤고 말이다. 이럴거면 급하게 1년마다 타이틀을 출시하지 말고 전처럼 좀 더 시간을 들여 제대로 내놨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박살을 내놨지만 베테랑 개발진들이 투입됐다는 다음 스위치 신작으로 출시될 물건을 '신 기종에 기존 개발진이니 괜찮을거야'라며 희망을 걸고 있는 본인은 구제할 수 없는 포켓몬스터 팬보이인가보다.​ 

 

 

조건희 / desk@gameshot.net | 보도자료 desk@gamesho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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